삼호주얼리호 영웅담? 8개월만에 풀린 비밀 MBC 2580 '그날 아덴만에서는'…"대피방송 못들었다" "다 죽는다 생각했다“
(미디어오늘. 10/3) 정부와 군 언론들이 성공적인 피랍선원 구출작전이라고 평가해왔던 지난 1월의 이른바 ‘아덴만 여명’ 작전에 대해 구출된 삼호주얼리호 선원들이 당시에 “모두 다 죽는 줄 알았다”며 이 같은 작전이 최선이었는지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나서 파문을 낳고 있다. 해군이 총세례를 퍼부었을 때 이들은 모두 주얼리호 조타실에 해적과 함께 있으며 날아오는 총탄에 죽었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고 전했다. 또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조차 작전에 사용된 총탄이 인질 구출작전에 적합하지 않은 것이었다는 의견을 냈던 것으로 뒤늦게 확인되기도 했다. 선원들은 자신들이 귀국했을 때 “모든 게 거짓처럼 느껴졌다”고 회고했다. MBC <시사매거진 2580>은 2일 밤 방송된 ‘그날 아덴만에서는...’ 편에서 피랍선원들이 사건 8개월 후에 털어놓은 증언을 집중 취재해 방송했다.
선원 A는 방송에서 “지금까지 한국에 왔을때부터 모든 게 다 거짓 같이 밖에 안 느껴져요. 솔직히 뭔가 바르게 모든 걸 얘기해야지 이거는 얽히고 설킨 거를 숨긴다고”라고 폭로했다.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1차 구출작전 실패 이후 해적들의 위협과 구타가 가혹해지면서 선원들의 동요도 커졌다. 특히 제작진은 “석해균 선장은 ‘엔진에 물을 타고, 심지어 배에 불을 질르라’고 해서까지 배를 멈추라고 지시했지만 ‘위험이 너무 크다’는 일부 선원들의 반대로 무산됐다”며 “해적에 맞서다 위험을 겪지 말고 차라리 소말리아로 끌려가자는 것이 애초부터 일부 선원들의 생각이었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선원 A는 “그냥 (소말리아로) 가자는 거요. 가 있으면 다 해결해주고 할 텐데 왜 자꾸 지연시켜 쟤내들 흥분시켜가지고...만약에 죽으면 어떻게하느냐”고 말했다.
이어진 해군의 2차 구출작전 때 이들은 사실상 죽는 것으로 여겼다고 말했다. 해군의 사격은 선원들 15명과 해적이 함께 있었던 조타실로 집중됐다고 이들은 전했다. 선원 A는 “갑자기 막 양쪽에서 진짜 막 거의 고개도 못들 정도로 양쪽에서 좌측에는 해군 배에서, 우측에는 헬기에서 사격하는데”라고 말했다.
특히 군이 그동안 한국어로 ‘대피하라’고 방송하는 기지를 발휘했다고 했지만 이 역시 무용지물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제작진은 “해군은 작전 돌입 직전 선박 무선통신망을 통해 한국어로 선원들은 안전구역으로 대피하라는 방송을 했지만 정작 선원들은 이를 듣지 못했다”며 “주얼리호의 무선통신망이 모두 꺼져있어 무용지물이었던 것”이라고 밝혔다.
선원 C는 “대피방송은 뭘 합니까. 나는 방송 못들었습니다”라고 했고, 선원A는 “방송은 무슨 자기들 말이죠. 우리는 전혀 감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라고 전했다.
대피방송을 듣지 못한 선원들은 느닷없이 총알세례를 받았다는 것이다.
선원 A는 “머리를 못 들 정도죠. 고개만 이렇게 들었으면 그냥 뚫고 나가는 거죠. 매트리스 위로 픽픽픽픽 날아오고..”라고 전했고, 선원 B는 “레이더랑 조타기 사이에 숨어있었거든요. 너무 위험해서 다른 데로 막 옮겨 다녔는데, 구출되고 보니까 레이더랑 조타기에 구멍이 다 뚫려 있더라고요. 총알 자국이었죠.”라고 폭로했다.
인질 구출작전 과정에서 상당수 인질들이 오히려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것이다.
선원 C는 “어떤 데는 (무릎 한참 아래) 이 밑에 까지 구멍이 다 났습니다. 지금이야 뭐 우리가 살았으니까 웃어가면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때 당시 그 상황은 누가봐도 이건 전부 다 죽는다 생각했습니다”라고 끔찍했던 상황을 묘사했다.
실제로 석해균 선장이 무릎에 맞은 첫발 역시 해군의 저격용 총탄이어서, 조금만 위에 맞았어도 생명에 위태로울 수 있었다고 제작진은 분석했다.
총탄의 강도 역시 인질작전에 적절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제작진은 “정부기관 역시 이같은 문제를 제기했던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며 “당시 해군 총탄 감정했던 국과수는 링스헬기 최영함에서 발사한 해군의 저격용 총탄은 물론 UDT 대원들의 총탄도 상당한 관통력을 갖고 있어 인질 구출 작전에는 적합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고 방송했다.
MBC는 총기전문가의 말을 빌어 “인질구출 작전을 할 때 인질범을 향해서 쏜 총탄이 인질을 상하게 할 염려가 있기 때문에 (다른나라의 경우) 관통력이 조금 약한 그런 탄을 사용한다”고 전했다.
총격전 끝에 조타실로 진입한 UDT 대원들의 진압작전 역시 ‘위험천만’했다. 제작진은 “총탄이 난무하는 가운데 선원들의 눈앞에서 해적들이 차례차례 사살됐다”고 전했다. 선원 A는 “옆에있는 애들(해적들)을 가리키면서 ‘여기 소말리아인 있습니다’ 하니까 쏴버려요”라고 말했고, 선원가족은 “바로 옆에서 사람이 총을 맞았는데 그 충격이 얼마나 크겠어요. 나중에라도 그 충격이 다시 나올까봐 솔직히 걱정돼요”라고 우려했다.
이밖에도 애초 이들의 항로 설정부터 삼호해운측의 무리한 요구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제작진에 따르면, 삼호해운이 아랍에미리트에서 스리랑카로 향하는 삼호주얼리호에게 ‘해적 출몰 위험이 크니 파키스탄 연안으로 붙어서 항해하라’는 이메일을 보냈다가 또다시 ‘삼호주얼리호 화물주가 사정이 급하니 빨리 도착하길 바란다’는 이메일을 보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때문에 주얼리호는 해적출몰의 위험이 있다고 하는 스리랑카로 향하는 직선코스를 택했다.
선원 B는 “향해사와 이건 좀 너무 위험한 거 아니냐고 둘이 얘기를 많이 했어요. 그러면서도 설마 설마 했죠”라고 말했다. 제작진은 “주얼리호가 납치 위험을 사전에 알고도 항로를 택했다는 중요한 진술”이라고 평가했다.
이들은 사건 8개월이 지난 지금 극심한 외상후 스트레스와 후유증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인 만 보면 과거 소말리아 해적이 떠올라 놀라는 일이 많고, 악몽에 시달리며, 버스같은 밀폐된 운송수단에 탈 때면 혹시 외국인이 있지는 않은지 놀란다고 한다. 무엇보다 법정관리에 들어간 삼호해운 측에서 회사사정이 어렵다며 5개월째 월급을 지급하지 않고 있고, 치료비조차 내어주지 않고 있어 이들은 경제적 고통에도 시달리고 있다.
제작진은 “생사를 넘나들던 석해균 선장은 다행히 건강을 회복하며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지만 다른 선원들의 삶은 빠르게 잊혀져가고 있다”며 “당시 구출작전 평가역시 목숨 걸고 뛰어든 군인들의 요이는 찬사를 받아 마땅하지만 과연 당시 작전이 최선이었는지에 대해 구출된 일부 선원들이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