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 협업 우수사례로 주목받는 선내 인터넷 개선 사업
선원기금재단, 해기사 양성 지원금 5억 원 전달
선박에서의 인터넷은 오랫동안 ‘있으나 마나 한 것’에 가까웠다. 사진 한 장을 보내는 데도 수분이 걸렸고, 가족과의 영상통화는 엄두조차 내기 어려웠다. 망망대해 위에서 선원들은 기술적 한계보다 고립과 단절과 싸워야 했다. 이 같은 현실을 바꾸기 위한 첫걸음이 본격적으로 내디뎌졌다. 노·사·정이 공동으로 조성한 선원기금을 통해 저궤도 위성 인터넷이 선박에 도입되어, 해상에서도 육상과 유사한 LTE급 통신 환경이 가능해진 것이다.
재단법인 선원기금재단(Korea Seafarers Foundation, KSF)은 2023년 11월 6일 선원노련과 한국해운협회가 체결한 「선원 일자리 혁신과 해운산업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한 노사합의」에 따라 설립됐다. 합의의 핵심은 한국인 선원의 양성·고용 확대와 근로환경 개선을 위한 선원기금 조성이었다. 그 결실로 2024년 5월 20일, 서울 여의도 해운빌딩에서 발기인 창립총회가 열렸고, 선원기금재단은 공식 출범했다. 재단은 선원 교육·훈련, 양성·수급, 장기승선 장려, 근로환경 개선, 사회공헌 사업 등을 체계적으로 추진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특히 설립 첫해인 2024년, 재단은 선박 인터넷 환경 개선, 선원 교육생 생계비 지원, 장기승선 장려 사업을 주요 사업으로 선정했다. 이 가운데 선내 인터넷 개선 사업은 노사합의 단계부터 선원노련이 가장 강하게 요구해 온 과제다. 선원노련은 그간 장기 승선으로 인한 고립감과 단절이 이직률 상승과 인력 유출로 이어진다는 점을 지적하며, 선내 인터넷 환경 개선을 최우선 과제로 제기해 왔다. 선원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지 않고서는 안정적인 인력 확보도, 해운산업의 지속 가능성도 없다는 판단에서다.
이에 따라 선원기금재단은 국제필수선박과 국제지정선박 등 300척을 대상으로 저궤도 위성 인터넷 도입 비용의 일부를 지원하기로 했다. 척당 매월 80만 원의 통신료가 지원되며, 이를 위해 올해 약 19억 원이 투입된다. 이 사업의 재원은 정부 예산이 아닌, 톤세제 혜택을 기반으로 선사들이 각출해 조성한 기금이다. 정부는 제도적·행정적 지원을 맡았고, 실질적인 재원과 사업 추진의 출발점은 노·사의 합의와 선원기금재단이었다.

저궤도 위성 인터넷 도입의 효과는 기념식 현장에서 그대로 확인됐다. 노·사·정 차관급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전 세계 바다를 항해 중인 6척의 원양 선박과 실시간 화상 통화 시연이 진행된 것이다. 기존 정지궤도 위성 인터넷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끊김이 거의 없는 영상과 음성이 화면에 펼쳐지자, 행사장 참석자들은 화면에 집중했다. 선원들 역시 달라진 통신 환경을 체감하며 솔직한 소감을 전했다.
류제명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2차관이 체감 품질을 묻자, 현대글로비스 조영현 1항사는 "이전 정지궤도 위성보다 확실히 빠릅니다. 통화나 인터넷 모두 육상과 비교해도 90에서 100% 정도의 속도가 나오는 것 같습니다"라고 답했다. 과거에는 입항 후에야 가능했던 가족 통화도 이제는 일상이 됐다. 가스선에 승선 중인 최보국 엔지니어는 "도입 전에는 한국에 들어와야만 데이터 로밍으로 가족과 통화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원하는 시간에 자유롭게 연락할 수 있다"며 "카카오톡 영상 통화도 끊김 없이 된다"고 말했다. HMM 강명진 선장은 "음성 통화뿐 아니라 화상 통화까지 가능해지면서, 특히 애인이 있는 젊은 사관들이 상당히 만족해하고 있다"며 웃음을 보였다.
이날 가장 큰 공감을 얻은 발언은 팬오션 이승준 선장의 말이었다. "제가 여섯 살 쌍둥이 아빠입니다. 인터넷이 좋아지면서 바다 위에서도 아이들 얼굴을 자주 볼 수 있게 됐습니다. 아이들도 좋아하고, 저도, 가족 모두가 행복합니다." 인터넷 환경 개선이 단순한 통신 인프라 확충을 넘어, 선원들의 삶과 가족의 일상을 잇는 변화임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화상 통화 도중에는 선상 생활의 단면을 보여주는 소소한 장면도 연출됐다. 김성범 해양수산부 차관이 건의 사항을 묻자, 한 선장은 "회사에서 지원을 잘해줘 만족한다"고 답했다. 그러자 김 차관은 웃으며 "혹시 본사에서 연락 온 건 아니죠? 다는 말씀하지 말라고?"라고 되물었고, 화면 너머 선원들과 행사장은 웃음바다가 됐다. 선장은 "아니다. 회사가 정말 잘해준다"며 거듭 만족을 표했다. 짧은 농담 속에서도, 선내 인터넷과 복지가 선사별·선박별로 여전히 편차가 존재한다는 현실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었다.
해양수산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주파수 분배표 개정과 기술기준 마련, 국경 간 공급협정 승인 등 제도적 기반을 정비하며 저궤도 위성 인터넷 도입을 지원했다. 이를 통해 기존 대비 약 50배 빠른 통신 환경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이번 변화의 출발점은 노·사의 합의와 선원노련의 지속적인 문제 제기, 그리고 선사들이 각출해 조성한 선원기금이었다. 제도는 정부가 뒷받침했지만, 필요성을 제기하고 재원을 마련한 것은 현장의 노력이었다.
망망대해 위에서의 인터넷은 이제 선택이 아닌 기준이 되고 있다. 선원기금재단을 통해 시작된 이번 변화가 일회성 성과에 그치지 않고, 선원들이 체감하는 지속적인 근로 환경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편, 선원기금재단은 이날 한국해양수산연수원 본원 대강당 오션폴리텍 상선3급 과정 교육생을 대상으로 한 선원기금 지원금 5억 원 전달식을 함께 개최했다. 행사에는 선원기금재단 이승우 이사장을 비롯해, 재단 이사로 활동 중인 문철수 KSS&KMI선원연합노조 위원장과 선원노련 박영삼 해운정책본부장이 참석했다. 해양수산부 김성범 장관 직무대행(차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류제명 제2차관, 선원 관련 유관기관 관계자들과 오션폴리텍 교육생들이 함께해 선내 인터넷 개선 사업과 선원 복지 확대의 의미를 공유했다.
선원기금재단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오션폴리텍 상선3급 교육생을 대상으로 1인당 매월 50만 원의 교육생 지원금을 지급해, 교육기간 동안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는 승선 경험이 없는 예비 해기사를 양성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부담으로 지적돼 온 생활비 문제를 완화하기 위한 조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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